2010년 1월 8일 금요일

겨울 한파의 고행기

그래, 이건 작년 이맘때의 상황과 같을 거야, 그러니까 해결책도 이미 알고 있어.
라고 생각했다. 그리고, 그 생각은 틀렸다.

주말에 부모님 뵈러 삼 일간 집을 비우고 돌아와 보니 물이 나오질 않는다.
작년, 설에 집에 다녀온 후 이 같은 일이 생겼을 땐 심히 당황했던 기억이지만, 뭐 한번 겪은 일이니 원인은 대충 짐작이 갔다.
당시엔 계량기가 동파되었었는데, 이번도 같은 원인일거라 생각이 들어 1층까지 내려가(집은 4층이고, 계량기는 1층 외벽에 있다.) 확인해 보니 계량기는 멀쩡한 게 아닌가.

흠... 잠시 고민 모드...

그래,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았고 거기 보일러 배관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그게 아마 얼었나 보다 라고 심증을 굳힌 후, 이걸 어떻게 녹일지에 대해 열심히 구글링 해보니 몇가지 방법이 나왔다.
그리고, 그 방법들을 이틀 동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헛수고 였고,

'아... 이젠 설비를 불러야 하나. 비쌀텐데'

라고 고민/망설임을 한참 하다가 마지막으로 이 방법만 해보고 안되면 연락하자라고 결심.
한 손엔 끓인 물을 담은 3리터 짜리 주전자를 들고, 수건과 헌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짊어 진 채 계량기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. 며칠 째 눈이 녹지 않아 계량기통 주위엔 10cm 넘게 눈이 쌓여 있었다. 계량기통 뚜껑을 연 후, 계량기 관 주변을 수건으로 빙빙 두른 다음 뜨거운 물을 그 위에 천천히 부었다. 그리고 가지고 간 헌 옷가지들로 그 밖을 다시 한번 둘러 싼 후, 다시 4층으로 올라왔다.
현관문을 여는데 마치 환청처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,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보니...

"반갑다! 물아!"

인생 처음으로 수도꼭지에다 반갑다는 인사를 외치고 있는 내 모습.
그동안의 삽질이 말 그대로 삽질이 되어 버린 것처럼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되어버린 상황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.

뭐,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떠오는 몇가지 생각들.
- 첫 단추를 잘 못 끼었는지 의심이 든다면, 바로 풀어 확인해야지 괜히 다른 단추 다 잠그고 나서 확인하지 말자.
- occam's razor. 진리는 아니지만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효율이 있는 이론이다.
- 문제에 직면하면 해결책이 번거롭다고 뒤로 미루지 말자.

흐, 수도 한 번 언 걸로 생각이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서 샤워중이다.

글만 있으니 왠지 썰렁해서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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